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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게으른 천재 요한 크루이프

FC 바르셀로나에는 다른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레전드가 존재한다. 매 시즌 시작 전에 치르는 하나의 친선경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감페르컵의 주인공 후안 감페르부터, 선수 본인과, 바르셀로나에서의 선수 생활이나, 짧고 굵었던 디에고 마라도나. 500경기에 가까운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0점대의 놀라운 실점률을 기록한 골키퍼 수비사레타. 골 넣는 수비수 쿠만. 팬텀 드리블의 미카엘 라우드럽. 불가리아의 전설 스토이치코프. 투지와 열정이 넘치는 루이스 엔리케. 왼발의 마술사 히바우두. 축구 가문 호씨 형제들 호마리우, 호나우도, 호나우지뉴, 뼛속까지 꿀레(Cule) 조셉 과르디올라 등, 바르셀로나를 빛낸 스타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레전드는 바로 요한 크루이프라고 할 수 있다. 요한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자 클럽에 철학을 심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크루이프는, 240경기에 출장해 190골을 기록하고, 리그 3회, 컵 대회 2회, 유로피언컵 3회(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끄는 등,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내지만, 클럽의 성공으로 기강이 해이해진 보드진과 선수들 때문에 불만을 느낀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73~74시즌 당시, 바르셀로나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59~60시즌 이후로 14년째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리그 순위도 19위였다.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크루이프는 2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데뷔 경기를 치렀고, 팀은 4-0으로 승리하게 된다. 그 이후, 바르셀로나는 리그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으며, 리그 챔피언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베르나베우에서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와의 첫 대결에서 5-0이란 놀라운 스코어로 팀을 승리로 이끈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크의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사람들에겐 더욱 값진 승리였다. 이렇듯 크루이프는 단순한 팀의 간판스타가 아니라, 암울했던 시기에 팀을 구해낸 구세주이자,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한, 카탈루냐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크루이프만 놓고 보면, 신은 불공평하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들은 대부분, 엄청난 노력과 꾸준한 자기관리로, 그 자리에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크루이프는 다르다. 경기를 치르는 도중, 하프타임 때 담배를 태울만큼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골초에다, 아약스 시절, 달리기 훈련을 싫어해 서브 골키퍼와 숨어 담배를 태우며, 훈련에 불참할 정도로 노력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선수였다. 필드 위에선 위대한 선수였지만, 필드 밖에선 본받을만한 선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크루이프는, 클럽은 물론이고, 네덜란드 대표 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74년 서독 월드컵에 참가한 그는, 그 유명한 크루이프 턴을 선보이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게 된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는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냈고, 큰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축구 강국이었지만, 단 한 번도 챔피언 자리에 오르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크루이프도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는 비장했다. 당시 네덜란드 유니폼은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였고, 그 브랜드는 월드컵 주최국이자 결승 상대인 서독이란 국가의 브랜드었기 때문에, 크루이프는 아디다스를 상징하는 3선 중에 줄 하나를 떼어내고 결승전에 출전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는, 베켄바워가 이끄는 독일에 사실상 원정경기라고 볼 수 있는 결승전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발롱도르는 베켄바워나 게르트 뮐러가 아닌, 게으른 천재 요한 크루이프가 수상하게 된다. 그 이후 77~78시즌까지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서 143경기에 출전해 48골을 기록하고, 발롱도르 총 3회 수상을 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바르셀로나에서 은퇴한다. 그 이후에 다시 미국과 스페인, 네덜란드에 속한, 여러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84년에 페예노르트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출처가 어디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축구계에는 3번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축구황제 펠레로 인한 축구 대중화와 아리고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 크루이프의 토털사커라고 한다. 또한 조사하는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조사 자료에 크루이프는, 펠레와 마라도나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전드이다. 요한 크루이프는 선수 시절엔 천재적인 재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감독 시절엔 팬들에게 재미있는 축구를 선사하면서 팀을 우승까지 올려놓는 명장으로서도 이름을 날린, 그야말로 레전드 중에 레전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