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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펩 과르디올라는 명장인가?

 

바르셀로나 관련 글들을 보다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코멘트가 있다. "지금 바르셀로나 스쿼드라면 내가 감독해도 과르디올라만큼 한다."라는 주장이다. 구단들이 돈이 남아돌아서 비싼 연봉 주고, 감독들을 선임하는 게 아니다. 반론을 해야 할 만큼, 이 주장이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보자.


 

바르셀로나는 역사적으로도 명문팀이고, 언제나 우승에 있어서 경쟁력 있는 팀인 건 맞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이전, 레이카르트 시절 마지막 시즌부터 살펴보자. 당시 바르셀로나는 레이카르트 감독 체제에 호나우지뉴와 데코. 그리고, 에토등 스타선수들이 포진해 있었고, 현재의 푸욜과 챠비, 이니에스타, 메시 역시 존재했었다.



이 코치진과 선수단은 05~06 챔피언스 리그 우승 후, 동기부여를 잃은 모습이었다. 레이카르트 감독은 스타 선수들의 관리를 소홀히 하여, 결국엔 팀 스피릿에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선수들의 기강은 점점 해이해졌다. 세계적인 슈퍼스타이자 팀의 에이스 호나우지뉴는 자기관리 부족으로 파티 등, 연일 스캔들에 휘말리며 결국 시즌 막바지에는 전력 이탈을 하고 만다. 이러한 상황들 덕분에 팀은 우승은커녕 비야레알에도 밀려 리그 순위 3위로 내려앉게 된다. 감독은 전술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스타 선수들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능숙하고 철저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감독으로 부임하고 선수들과의 미팅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당시 스타였던 안정환 선수를 길들인 일화는 후에 여러 번 기사나 자서전 등으로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결국 팀 개편을 명분으로 레이카르트는 경질되고, 놀랍게도 성인팀(1군팀) 감독 경력이 없는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게 된다.


 

자 이제,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고 나서 한 일은 뭐였을까? 선수단이 훌륭하니 그냥 선발 명단만 짜고, 경기는 선수들에게 맡기고, 승리만 챙기면서 명장 소리를 들어온 걸까?  당연히 아니다. 과르디올라는 가장 먼저 팀의 에이스이자 세계 최고 선수였던 호나우지뉴와 데코등을 과감 없이 정리한다. 그리고 메시, 챠비, 이니에스타 이 세 선수를 중심으로 스쿼드를 개편하게 된다.

 

 

지금은 발롱도르 후보에도 자주 포함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듀오, 챠비와 이니에스타지만, 당시 챠비는 데코보다도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선수였고, 자신이 팀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을 괴로워하며, 이적을 결심한 상황이었다. 이니에스타는 주 포지션도 없이, 수비형 미드필더부터 윙 포워드까지, 미드필드 전 지역을 땜방으로 출전하는 선수였다. (당시 내가 주위 친구들과 축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이니에스타에 관해 얘기를 꺼내면, 이름 정도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친구는 있었지만, 정확히 아는 친구는 거의 없었을 정도로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메시는 미래가 기대되는 신성이었지만, 무리한 드리블로 부상이 잦은 선수였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팀을 떠나려는 챠비를 팀에 잡아두고, 미드필드 지역에서 이니에스타와 호흡을 맞추게 한다. 그리고 부상이 잦은 드리블러 메시의 식단을 조절하고, 플레이 스타일을 변화시키면서, 시즌 모든 경기에 출전 가능할 정도로 부상을 입지 않는 선수로 변모시켰다. 실제로 메시는 레이카르트 시절 마지막 시즌에도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한 후, 맨유와의 챔스 4강전에 복귀한다. 그 이후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고 메시는 지금까지 부상 때문에 결장한 경우가 거의 없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메시의 플레이를 보면(등번호 30, 19번 시절) 말 그대로 드리블러였다. 그러한 플레이는 부상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그러한 경우이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부임 후, 메시는 혼자 드리블로 돌파를 시도하는 플레이에서 주위 동료선수들을 이용하는(2대1 패스) 플레이를 자주 보여준다. 이러한 플레이는 상대 수비 선수를 혼란에 빠트리는 효율적인 방법임과 동시에, 부상 위험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 데뷔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결과는 첫 시즌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이뤄낸다. 신성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로, 챠비와 이니에스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로 성장한다. 과르디올라가 부임할 때부터, 이 세 선수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가진 선수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시킨 인물이 과르디올라라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여기에는 피케와 페드로, 부스케츠도 빼놓을 수 없는 선수들이다. 과르디올라가 대단한 점은, 유스출신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성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각 리그 중위권 팀이나, 아약스와 같은 빅 리그 외의 명문 클럽들은, 유망주들을 성장시켜 빅 클럽으로 이적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는 바르셀로나와 같은 빅 클럽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스쿼드를 구성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다른 빅 클럽들도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낸다. '믿고 쓰는 레알 마드리드 유스'란 말도 있지 않은가. 대표적으로 첼시의 에이스 후안 마타와 발렌시아의 솔다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우승을 노리는 빅 클럽들은 소속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유스 출신 선수들이 A팀에 합류해서 지속적으로 출전하긴 어려운 상황들이 많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오랫동안 유지해 온 팀의 철학을 바탕으로 유스들을 길러 낸다. 이러한 구단의 정책과 과르디올라의 유스출신 선수 활용으로 인한 성과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선수빨이 아닌, 다른 의미로 바르셀로나라는 팀의 버프를 받은 건 분명하다. 한마디로, 바르셀로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감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으로 A팀의 주장까지 맡았고, 은퇴 후에는 유스 코치부터 B팀 감독까지 맡은 이력이 있다. 거기에 구단의 철학을 심어준 요한 크루이프의 제자이다.

 

 

 

이렇듯, 과르디올라는 그 누구보다도 바르셀로나 철학에 부합하며, 챠비와 이니에스타 그리고 메시를 비롯한, 유스 출신 선수들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리고, 극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다른 팀에서 감독을 맡더라도, 바르셀로나에서 만큼의 성공을 가져오진 못 할지도 모른다. 카펠로 감독이 우승 청부사라고 해서 항상 우승하는 건 아니듯이 말이다. 우승을 하게 되더라도 바르셀로나에서처럼 센세이션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스 출신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시킨 것.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면서 기존의 팀의 색깔을 보다 뚜렷하고, 효율적으로 발전시킨 것. 마지막으로 4시즌 동안 무려 14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으로도 펩 과르디올라가 명장으로 평가받기엔 이미 충분하다.